나도 여자를 좋아한다.
신진대사 왕성한 건장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열 계집 마다하는 놈 없다' 는 옛말이 있다.
그 '놈'이라는 족속 안에 나도 예외없이 포함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은 좀 다르다.
좋아는 하지만 지금껏 그걸 시원하게 표현하거나 행동에 옮겨 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 좋아하는 여자를 계속 피해만 다녔다고 하는 것이 맞다.
좋아는 하면서도 피해 다닌 이유가 나에게는 두세가지 있다.
첫번째 한가지는 가족사 때문이다.
우리집안의 남자들은 유난히 외간 여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집안 어른 중에서 일부종사(一婦從事)하신 분이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그 부인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나의 어머니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가장이 생산적인 일은 하지않고 엉뚱한 데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집안 꼴이 어떻게 되었겠나.
가산은 쪼그라들고... 딴 살림에... 이붓자식에...
나는 어려서 어머니의 눈물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커서 가정을 이루면 절대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
여자 문제로 아내의 눈에 눈물 흘리는 짓은 절대 하지않겠다.'
동생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아직까지 여자문제로 부부싸움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나의 직업의식 때문이다.
청춘을 다 보낸 나의 직업은 공무원이 아니었음에도 그에 못지않는 청렴성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여자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조용히 옷 벗겨서 일찍 집에 보내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직장 동료나 선배들 중에서 여자문제로 조기 퇴직하는 사례를 심심치않게 봐 왔다.
모 지점장은 여자고객과 골프연습장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관계가 깊어졌는데, 우연찮게 남편에게 꼬리가 잡혀서 결국 옷을 벗었다.
또 한 사람은 성인나이트에서 만난 여자와 좀 놀았던 모양인데 또 남편한테 들켜서 간통을 했네 안했네... 소송까지 간 경우도 있다.
이러다보니 가급적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여성과의 접촉은 피하게 되고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한번은, 친하게 지내던 고객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자리에 고객의 여자 친구(?)가 동석을 했다.
자기들만 놀기가 미안했던지 그 여자가 친구를 불렀다.
새로온 친구는 자기 신랑도 금융기관에 근무했다는 둥 자기 소개를 늘어놨다.
족보를 따지면 그 신랑이 누군지 알것도 같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나서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에 온 친구는 자연스럽게 나의 파트너가 되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런데 그녀가 술이 과했는지 과한 척 하는 건지 스킨십이 점점 진해 지는 것이었다.
브루스를 추면서 몸을 착 감는데....
점잖은 척 했지만 나의 몸에서도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슬며시 몸을 풀고는 자리에 앉았다.
같이 갔던 커플도 몸이 어지간히 달았는지 장소를 옮기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심전심으로 그곳을 빠져나와서 주변을 살펴보니 온통 모텔촌이었다.
몸은 뭔가를 갈구하고 있고, 머리속은 갈등으로 어지럽고.....
이때 눈 딱 감고 토끼기로 결심했다.
마침 대기중인 택시가 바로 코 앞에 있기에 올라타고는 문을 닫았다.
집을 향해서 줄행랑 치는데 근질거리는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소리....
"야 이 쪼다 새끼야 ~"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두가지 마음이 서로 싸운다.
"야 이 빙신아. 니는 줘도 못 묵나...."
"그때 잘 토꼈지 안 그랬으면 어찌 될뻔 했노..."
내가 여자를 조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내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다.
여염집 여자와 바람을 피운 적은 아직 한번도 없지만 나 역시 완벽한 놈은 아니다.
젊은 시절 동료들과 술 한잔 하다가 술낌에 실수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안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집에 들어가면 얼매나 쫄리던지....
괜히 말 더듬게 되고... 엉뚱한 친구 이름 둘러대며 거짓말 하게 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내 생활신조가 "당당하게 살자"인데 이건 아닌거라...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자를 '돌' 보듯이 하는 게 아니라 '사진 속의 꽃' 보듯이 한다.
향기를 맡으면 내가 언제 돌아버릴 지 모르기 때문에, 코를 막고 힐끔 쳐다보고 만다.
'하기사 아직까지는 모르지...
지금까지는 잘 참아왔다마는...
늦바람에 눈이 뒤집힐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느니....'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1-02 대구장애인직업훈련센터 공연 (영상과 사진들) (0) | 2011.11.07 |
---|---|
[스크랩] 신체검사 (0) | 2011.10.19 |
참기를 잘했는가 (0) | 2010.08.26 |
첫 데이트 (0) | 2010.08.18 |
나의 무대 (0) | 2010.07.29 |